바이올렛 에버가든 감상평
퇴근길에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자주 보이던 애니메이션이 문득 생각나 오랜만에 넷플릭스를 켰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이라는 작품으로, 방영 당시 꽤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 바이올렛은 전쟁터에서 도구처럼 취급받으며 자란 아름다운 소녀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애정, 분노, 슬픔 같은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준 소령을 만난다. 소령은 그녀에게 '바이올렛'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전쟁 끝에 사망하며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다.
전쟁이 끝난 후, 바이올렛은 소령이 남긴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어 자동수기인형이라는 직업을 선택한다. 다른 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이다. 이 일을 하면서 그녀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 연인 간의 사랑, 이별의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해간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죽어가는 어머니의 편지를 대필하고 돌아온 바이올렛이 동료들 앞에서 눈물을 쏟는 장면이다. 감정을 되찾은 인간 바이올렛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슬픈 감정을 자극하는 스토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바이올렛이라는 캐릭터에 몰입되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잔잔하게 위로받으며 감동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특히 인간으로서 감정이 무뎌지는 느낌을 받는 사람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다.
느낀점
마지막 편까지 감상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김이나 작사가의 청춘페스티벌 강연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진지함을 표현하는 것을 꺼린다는 이야기였다. '씹선비', '중이병' 같은 말들이 두려워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결국 비슷비슷한 무난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늘 내 진지한 생각과 감정이 이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스스로를 검열했다. 내면을 드러내는 건 마치 속살을 보이는 것처럼 위험하다고 여겼고,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겐 진지한 이야기를 극도로 피했다. 그 결과 시니컬한 청년이 되어버렸다. 지금와서 보면 참 아쉽다. 사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생각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말하는 타이밍을 놓치는 게 더 큰 문제다. 생각이 정리되고 감정이 분명해졌다면, 때로는 용기 내어 상대방에게 내 생각을 전해볼 필요가 있다.
일을 하면서도 비슷한 걸 느낀다. 어려운 문제를 혼자서 붙들고 있어봤자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다면, 그걸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는 게 결국 일을 진전시키는 방법이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바이올렛 같은지도 모른다. 그녀처럼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주변의 시선과 분위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풍부한 감정을 가지고도 스스로 억제하는 우리가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편지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머릿속에서 쳇바퀴처럼 맴도는 생각이나, 정리되지 않는 관계가 있다면, 바이올렛처럼 편지로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 나는 이제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나만의 편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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